양의 특성이 나의 특성이 되게하라!  

목자는 양을 친구처럼 자식처럼 여기고 보살핀다. 그렇기 때문에 100마리의 양 중 한 마리라도 잃으면 목자는 99마리의 양을 버려두는 위험을 감수하고 그 한 마리를 찾아 나선다.
그래서 그 양을 찾으면 누가 15 : 4, 5 에 나오는 것처럼 어깨에 메고 돌아와 기뻐한다.
그러면 성서에서 많은 동물 중에 양에게 애착을 느끼는 이유는 무엇인가? 양의 특성 때문이다. "양" 하면 어떤 특성이 떠오르는가? 순종이라는 특성이 떠오를 것이다. 그러나 양을 직접 관찰해 보면 그냥 순종이 아니다. 한번은 양을 직접 관찰할 기회가 있었다. 목자는 양에게 각각의 이름을 붙여주고 그것을 불렀다. 맨 처음 양을 "홍길동"이라고 부르자 양은 그냥 어슬렁어슬렁 걸어오는 것이 아니라 달려와 신기하게도 자기의 이름을 써 붙인 자리에 정확히 섰다. 그 다음 양을 "김철수"라고 부르자 역시 마찬가지로 즉각적으로 달려왔다. 그리고 암 양에게는 "김영희"라는 이름이 붙여져 있었고 그 이름을 부르자 역시 같은 반응을 보였다. 그렇다. 양은 요한 10 : 3 에서 알려주는 것처럼 목자의 음성에 즉각적인 순종을 나타낸다.
또한 요한 10 : 5 에서는 양은 낯선 사람의 음성은 듣지 않는다고 알려준다. 그래서 이번에는 실험을 해 보았다. 어떤 낯선 관광객이 직전처럼 양의 이름을 차례로 불렀지만 그들은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만일 목자의 음성을 녹음한 테이프를 양들에게 틀어주면 어떨 것인가? 그들은 녹음된 목자의 목소리를 식별하고 그대로 따랐다. 이처럼 양은 낯선 사람이 아니라 목자의 음성을 듣고 즉각적인 순종을 하기 ?? 때문에 양 같은 사람도 조직의 인도에 마지못해서가 아니라 기꺼이 즉각적인 순종을 한다.

두 번째의 양의 특성은 뿔에 있다. 양의 뿔은 동그랗게 말려져 있다.
그렇기 때문에 염소의 뿔이 공격용인 반면 양의 뿔은 방어용이다. 그러므로 양 같은 사람은 로마 12: 17 에서 알려주는 것처럼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않고 상대방의 약점을 들추지 않는다.

세 번째 양의 특성은 눈에 있다. 염소의 눈은 째려보는 듯해 무섭지만 양의 눈은 평화롭다.
그러므로 양 같은 사람은 사물을 언제나 긍정적인 시각으로 보고 동료 형제자매의 약점이 아니라 장점을 본다. 여호와께서는 잠언 6: 17에서 알려주는 것처럼 "교묘한 눈"을 싫어하시기 때문이다.

네 번째 양의 특성은 입에 있다. 양의 입은 두 가지 역할을 한다. 그것은 먹는 일과 말하는 일이다. 염소의 울음소리와 양의 울음소리는 매우 다르다.
염소의 울음소리는 거칠고 째지는 음성이지만 양의 울음소리는 우아하다. 그러므로 양 같은 사람은 에베소 4:29에서 알려주는 것처럼 썩은 말이 아니라 소금으로 맛을 낸 필요에 따라 세워주는 말을 해야 한다. 양 같은 사람은 자기가 피해를 볼 망정 다른 사람에게 싫은 소리를 못한다. 반면 염소 같은 사람은 조금만 건드려도 뿔로 들이받는 염소처럼 조금만 기분이 상하면 상대방에게 감정을 드러낸다. 온 우주에서 구경거리가 되고 있는 우리를 서로가 아니라면 누가 격려해줄 것인가? 그러므로 지금은 사랑과 용서를 나타내야할 시기인 것이다. 양은 가만히 있지 못할 것이다. 솔선해서 다른 사람에게 개인적 관심과 격려를 나타낼 것이다. 한 가지 예로 어떤 형제는 다른 회중에 공개강연에 갔다와서 그 회중에 격려를 주기보다는 자신이 격려를 받고 왔다고 말했다. 그 이유는 그 회중에 도착해서 보니 초등학교 5학년 여학생이 제일 먼저 회관에 와서 공개강연 연사가 오자 "안녕하세요? 오늘 공개강연 연사이신가봐요? 저 뒤에 게시판에 보니까 오늘 강연 주제가 ...이던데 맞죠? 저는 저쪽에 맨 앞에 할머니랑 같이 앉을 건데 기대가 되네요. 잘 하세요."라고 상냥하게 인사를 했다는 것이다.
그 형제는 그 말에 크게 격려를 받아 그 소녀가 보고 있다는 생각에 잘 하려니까 떨리기까지 했단다. 그리고 연설을 마치고 나니 그 소녀가 또 와서 "정말 잘 들었습니다"라고 정중히 감사를 표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장로든 파이오니아든 누구나 격려 받을 필요가 있다. 그가 한 연설이나 일에 대해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는다면 더욱 열심히 할 의욕이 생기지 않겠는가? 또 먹는 일과 관련해서는 어떠한가? 염소는 잡식성이다. 나무 뿌리도, 줄기도, 껍질도 다 먹는다. 그러나 양은 다르다. 양은 부드러운 풀만 먹는다. 그러므로 양 같은 사람은 배교적이고 적대적이고 불건전한 서적들을 통해 먹으려고 하지 않는다.

다섯 번째로 양의 특성은 양털에 있다. 양털은 보통 따뜻하고 내구성이 강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양털은 공기가 들어오면 양털끼리 뭉쳐서 그것을 싸안는다. 그렇기 때문에 양모로 된 이불은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다. 그러므로 양 같은 사람은 포용력이 있는 사람이다. 그는 골로새 3:12-14에 언급된 동정심 어른 부드러운 애정, 친절, 자기를 낮춘 정신, 온화, 오래참음, 사랑으로 옷 입은 사람이다.

여섯 번째로 양의 특성은 양의 위에 있다. 양은 위가 4개가 있다.
첫 번째 위는 혹 위로서 풀을 뜯어먹은 것을 저장하는 저장탱크 역할을 한다. 그 다음은 곁 주름위인데 거기서부터 본격적인 소화과정을 거쳐 마지막 주름위로 가게 된다. 이렇게 해서 양이 먹은 것을 완전히 소화하는데는 보통 4~5일이 걸린다. 그와 마찬가지로 양 같은 사람은 시편 77:12 "당신의 모든 활동을 묵상하고"라고 말한 것처럼 개인연구와 묵상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일곱 번째 양의 특성은 떼로 모여있다는 것이다. 양은 사시사철 서로 달라붙어 있기를 좋아한다. 그러므로 양 같은 사람은 히브리 10:24, 25의 모이라는 원칙에 따른다. 병든 양이 무리에서 나뉘어지고 뒤쳐지는 경우처럼 양 같은 사람도 영적인 병이 들면 무 활동이 되거나 비정규로 모이는 일을 등한히 하게 된다. 그 외에도 양은 목자를 절대적으로 신뢰한다. 염소는 다리를 다쳐 주인이 상처를 치료해 주려고 하면 뒷발로 주인의 가슴을 찬다. 반면 양은 머리를 주인의 품에 가만히 대고 내맡긴다. 만약에 목자가 양털을 깍다가 실수로 그의 살을 베었다면 양은 어떻게 반응하는가? 째려보며 "똑바로 깍아"라고 말하겠는가? ^^ 아니다. 양은 목자를 절대적으로 신뢰하기 때문에 죽은 듯이 그대로 있는다. 그러므로 양 같은 사람은 생활의 모든 부면에서 의뢰한다. 또한 양은 떨어져 있으면 울음소리로 목자에게 자기 소재지를 알린다. 그러므로 양 같은 사람은 집회에 참석하지 못할 경우 회중의 주임감독자와 같은 책임 있는 위에 있는 사람에게 자신의 사정을 보고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양은 목자를 따라가는 특성이 있다. 그러므로 양 같은 사람은 목자이신 여호와의 인도에 따라 생활한다.

양 같은 사람이 되자.